상세정보
토혈 (한국문학전집 430)

토혈 (한국문학전집 430)

저자
최서해 저
출판사
도디드
출판일
2016-08-01
등록일
2017-09-1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230K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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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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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월의 북국에는 아직 봄빛이 오지 않았다. 오늘도 눈이 오려는지 회색 구름은 온 하늘에 그득하였다. 워질령을 스쳐오는 바람은 몹시 차다. 벌써 날이 기울었다. 나는 가까스로 가지고 온 나뭇짐을 진 채로 마루 앞에 펄썩 주저앉았다. 뼈가 저리도록 찬 일기건마는 이마에서 구슬땀이 흐르고 전신은 후끈후끈하다. 이제는 집에 다 왔거니 한즉 나뭇짐 벗을 용기도 나지 않는다. 나는 여태까지 곱게 먹고 곱게 자랐다. 정신상으로는 다소의 고통을 받았다 하더라도 육체의 괴로운 동작은 못 하였다. 그런데 나는 형제도 없고 자매도 없다. 아버지는 내가 아직 강보에 있을 때에 멀리 해외로 가신 것이 우금(于今) 소식이 없다. 그러니 나는 이때까지 어머니 덕으로 길리었다. 어머니는 내가 외아들이라 하여 쥐면 꺼질까 불면 날을까 하여 금지옥엽같이 귀여워하셨다. 또 어머니는 여장부라 할 만치 수완이 민활하여 그리 큰 돈은 못 모았어도 생활은 그리 군졸(窘拙)치 않았다. 그래 한닙 두닙 모아서 맛있는 것과 고운 것으로 나를 입히고 먹였다. 나는 이렇게 평안하게 부자유가 없이 자라났다. 이렇게 나뭇짐 지는 것도 시방 처음이다. 지금 입은 이 남루한 옷은 이전에는 보기만 하였어도 나는 소스라쳤을 것이다. 지금 우리 집 운명은 나에게 달렸다. 여러 식구가 굶고 먹기는 나의 활동에 있다. 어머니는 늙었다. 백발이 성성하시다. 민활하던 그 수완도 따라서 쇠미(衰微)하였다. 나는 처도 있다. 금년에 세 살 되는 어린 몽주(夢周)도 있다. 그런데 나의 처는 병석에서 신음한 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러나 나는 이때까지 직업을 얻지 못하였다. 생소한 이곳에서 도와주는 이조차 없다. 내 생활은 곤궁하다. 나를 사랑하여 별별 고생을 다 하시고 길러 주신 어머니를 내가 벌게 된 오늘날에 이르러 차디찬 그 조밥이나마 배부르도록 대접지 못한다. 더욱 병석에서 신음하는 나의 처, 냉돌(冷突)에 홀이불 덮고 누워 있는 그에게 약 한첩 따뜻이 못 먹였다. 소위 우리 집의 가장이라는 나는?아무 수입 없는 나는?헐벗고 못먹고 신음하는 어머니와 처자를 볼 때나 생각할 때마다 부끄럽고 쓰려서 차마 머리를 들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네들은 조금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마루 앞에 나뭇짐 놓는 소리를 듣고 몽주가 뚫어진 문구멍으로 내다보더니 "아빠" 하고 부른다. 그리고 반가운 듯이 문을 탁탁 친다. 머루알같이 까만 눈?그 귀여운 웃음을 띤 어글어글한 눈이 창구멍으로 보인다. 그 모양을 보는 나는 잠깐 온갖 괴롬과 설움을 다 잊었다. 알지 못할 아름다운 사랑을 느꼈다. 이때에 어머니가 부엌문을 열고 내다 보신다. 흐르는 광음을 설명하는 늙은 낯에는 모든 괴롬과 근심의 암운(暗雲)이 돌았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은 칼로 쪽쪽 찢는 듯하다. "인제야 오니……. 배고프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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