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문학선
대지 위에 벌여놓인 (大地) 모든 물건들을 꿰뚫을 듯이 더운 불볕이 내려쪼이는 삼복 여름 어느 오후였었다. 나는 학교에서 하학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오다가 마침 주인집으로 들어가는 길 어귀에서 칠복(七福)의 어머니 최씨부인을 문득 만났다. 나는 그이를 보자 곧 ‘칠복의 소식을 듣고 올라온 것이다’고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칠복의 얼굴과 그 다리를 걷어치고 앉아 아편주사를 하던 모양이며, 까치 뱃바닥 같은 흰 손이 다시 서대문 감옥의 우중충한 붉은 담과 그 안에서 누렁 옷 입고 쇠사슬 차고 노역(勞役)을 하고 있을 그의 죽어가는 듯할 형상이며-그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을 주마등과 같이 연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