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김사량 작품집 (한국인이 읽어야 하는 근대문학소설 19)

김사량 작품집 (한국인이 읽어야 하는 근대문학소설 19)

저자
김사량 (金史良) 저
출판사
유페이퍼
출판일
2016-10-26
등록일
2017-09-1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7M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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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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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약 0

책소개

김사량 작품 모음집이다. 또한 기사를 모아서 인물에 대한 정보를 더했다. 백과사전 등에서 소개하는 것도 많은 정보가 있지만 비하인드 스토리가 기사에 있으며 주관적 견해도 재미를 더한다. ---------------------------------------------- 본명이 김시창(金詩昌)인 김사량(金史良)은 1914년에 평양에서 태어나 1950년의 한국 동란 중에 실종되기까지 남북한과 일본을 넘나들며 활동한 소설가 겸 극작가이다. 6ㆍ25 전쟁 중에는 북측의 종군기자로 활동하다 같은 해 11월 인민군 철수 기간에 지병인 심장병의 재발로 인해 강원도 원주 부근에 남았다가 실종되었다. 특히 1940년 단편 「빛속으로」가 조선인 작가 최초로 일본 신인 작가상인 아꾸가다와(芥川)상 후보상을 받음으로 해서 일본과 국내에서 각광받던 작가였다. 본디 부유한 집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일제에 순응해서 홍천 군수나 전매국장을 지내던 형과는 대조적인 인물이었다. 김사량은 평양고등보통학교 2년 시절인 1930년 전국 반일 학생운동에 참가하는 등 민족적 색채를 띄기 시작한다. 다음해인 1931년에는 관서지역 3개 도시(황해도 해주, 평북 신의주, 평양) 학생들의 동맹휴교사건에 가담하였다가 퇴학처분을 받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1933년 4월 구제 시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때부터 습작에 열중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토성랑」의 초고를 완성한다. 1936년 당시 동경제국대학 독문학과에 입학한 후 본격적으로 자기의 문학적 기질을 동급생들과 함께 문예지 《기항지(寄港地)》나 《제방(堤防)》을 통해 드러낸다. 그러나 그가 《제방》 2호에 실은 조선인 하층민들의 삶을 그린 「토성랑」이 ‘조선예술좌’라는 조선인 유학생 주축의 연극단체에 의해 공연되었는데 이 공연내용이 문제가 되어 생애 처음으로 모도후지 경찰서에 구금된다. 이 구류생활은 오히려 그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이후 그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빛속으로」 작품의 소재를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1939년 동경제대를 졸업한 그는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일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문예수도》와 《박문》에 수필 「북경왕래」, 「에나멜 靴의 포로」 등을 게재하다가 같은 해 10월 일본의 《문예수도》에 문제작인 단편 「빛속으로」를 발표했다. 또한 조선에서는 《조광》지에 「낙조」를 연재해서 작가활동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1~2년간이 그의 전생애에 있어서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시기이다. 이때 발표된 작품으로는 소설들로 「천마」(《문예춘추》, 1940.6), 「기자림」(《문예수도》, 1940.6),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문장》, 1941.2), 「지기미」(《삼천리》, 1941.4)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기행문 「산가세시간」(1941.1.), 수필 「고향을 생각하며」(1941.4) 등이 있다. 그러나 진주만 공격 이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곧 이어 조선인작가들에 대한 사상검열로 이어졌고 수난을 겪는다. 내선일체와 친일적인 작품쓰기만을 강요하자 김사량도 수난을 겪는다. 더욱이 「토성랑」에 의한 일차 구금의 경력이 있던 그는 「사상범 예방구금법」에 의한 예비검속의 결과 1941년 12월 2차 구금되기까지 한다. 다음해 석방되기는 했지만 계속되는 사상검열로 인해 작품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던 그는 대동강변의 경치를 세부적으로 묘사하며 조선의 대자연에 대한 깊은 숭앙심을 표현한 「물오리섬」이나 태백산맥에 사는 화전민들의 삶을 중심으로 태백산맥의 경치를 묘사한 장편 「태백산맥」 등 서너편의 작품만을 발표하다가 1944년부터는 작품활동을 멈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의 민족정신은 더욱 성숙되어 결국 그는 탈출을 결심하게 된다. 1945년 5월 중국 방문예정인 「조선출신병의 정황선전보고단」의 일원이 된 그는 연안부근에 이르러 “빈약하나마 나의 길을 역시 붓으로의 싸움에 있다”라는 결의와 함께 조선독립군에게로 탈출을 한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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