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가루지기 타령, 변강쇠가 (성두본) - 한국의 판소리 06

가루지기 타령, 변강쇠가 (성두본) - 한국의 판소리 06

저자
신재효 (申在孝) 저
출판사
논객넷 출판사
출판일
2017-06-16
등록일
2017-09-1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469K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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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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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변강쇠가 (─歌) - 판소리 사설 변강쇠가 (성두본 B)
가루지기타령 신재효가 개작한 판소리
가루지기 타령 (성두본) 작자·연대 미상의 판소리 계통의 작품이다.
변강쇠가 (─歌)는 가루지기 타령 (성두본) 과는 내용은 같으나 다른 버전으로 본다.
신재효 (申在孝 )에 의해 새롭게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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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가≫는 판소리계 소설의 하나다. <변강쇠타령>ㆍ<가루지기타령>ㆍ<횡부가(橫負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작품은 원래는 판소리 열두 마당에 들어 있던 작품이다. 송만재(宋晩載)가 쓴 ≪관우희(觀優戱)≫(1843)와 이유원(李裕元)이 쓴 ≪관극팔령(觀劇八令)≫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실전(失傳) 판소리 일곱 마당 가운데 유일하게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 선생에 의해 판소리 사설로 정리된 작품이다. 신재효 선생이 사설로 정리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작품 중 ‘신사년(辛巳年) 괴질(怪疾)’이란 구절에서 신사년을 1881년으로 보고 그 이후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사년 괴질’은 조선 순조(純祖) 21년(1821) 인도에서 발생한 콜레라가 중국을 통해 들어와 조선 각지로 퍼져, 괴질에 걸려 죽은 사람이 10만여 명에 이르렀던 사건을 말한다. 그러므로 동리 신재효 선생이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와는 무관하다. 아무튼 동리 신재효 선생이 작품 활동을 한 시기는 1867년부터 돌아가시던 1884년 사이니 ≪변강쇠가≫도 그 어간에 정리된 사설로 판단된다. 이로 보면 ≪변강쇠가≫는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판소리로 전승되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따르면, ≪변강쇠가≫는 조선 고종(高宗) 때 송흥록(宋興祿) 명창과 장자백(張子伯) 명창이 잘 불렀다 한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는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판소리 사설이 음란(淫亂)하고 괴이(怪異)한 내용이어서, 양반층이나 부녀자가 감상하기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소리가 상민 문화에서 양반 문화로 상승하는 과정에서 ≪변강쇠가≫가 판소리 판에서 사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이유로 이 작품은 고소설 형태로도 전환되지 못했다. 다만 신재효의 ≪변강쇠가≫만 유일하게 남아 전할 뿐이다.
이렇게 맥이 끊긴 ≪변강쇠가≫는 20세기 후반에 고 박동진(朴東鎭) 명창이 재현(再現)하여 가끔 불렀을 뿐 판소리로서 전승은 거의 끊겼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창극(唱劇)이나 마당극으로는 <가루지기타령>, <변강쇠전>, <옹녀전> 등의 제목으로 요즘도 가끔씩 상연(上演)되고 있다. 또 고우영(高羽榮) 화백의 신문 연재만화 <가루지기전>(1985)으로도 되살아났다. 게다가 영화로도 심심치 않게 만들어지고 있다. 엄종선 감독의 <변강쇠>(1986), 고우영 화백이 직접 감독한 <가루지기>(1988), 신한솔 감독의 <가루지기>(2008) 등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변강쇠가≫는 판소리로서 생명은 거의 다했지만, 오히려 다른 갈래로 그 범위가 확대되어 활발히 재창조되고 있다 할 수 있다. (고전해설ZIP, 2009. 5. 10.,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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