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빈 산 빈 들에 꽃이 핀다

빈 산 빈 들에 꽃이 핀다

저자
김승기 저
출판사
타임비
출판일
2012-12-19
등록일
2017-09-1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995K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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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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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시 꽃을 위하여

꽃들이 잠드는 계절, 그 문턱에서 올해에도 어김없이 몸살을 앓았다.

해마다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면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말경쯤이거나 11월 초경쯤이 되면, 일년에 한 번씩 꼭 2~3일을 아주 심하게 앓아눕는다. 바늘로 찌르듯이 마디마디 쑤시고, 천근만근 쇳덩이를 올려놓은 듯이 몸이 무겁고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한 열과 함께 惡寒으로 온몸이 덜덜 떨린다. 병원에서 의사는 매년 그렇다면 미리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두는 게 좋다고 충언한다. 그러나 아무리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는다. 그냥 방안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는 땀을 내면서 버틴다. 그렇게 3일을 버티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훌훌 몸을 털고 일어난다. 이것이 내가 꽃들이 잠드는 계절의 문턱에서 매년 한 번씩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다.

앓아누워 있는 동안, 지나온 일년을 뒤돌아보며 자기반성을 한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을 꽃들에게 베풀었는가? 정성을 다해 사랑을 쏟았는가? 제대로 올바른 사랑을 하였는가? 꽃들이 내게 준 것이 없다고 해서 투정을 부리지는 않았는가? 부족한 점은 없었는가? 아쉬운 점은 없었는가? 꽃을 찾아 들로 산으로 쏘다니면서, 오히려 꽃을 짓밟지는 않았는가? 그렇게 自問自答을 하며 반성을 한다. 내년에는 좀더 많은 사랑을 제대로 올바르게 정성을 다해 실천해 나가야지 다짐도 한다. 그러면서 겨울 내내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해둔다. 이것이 꽃을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생겨난 해마다 꼭 한 번씩 겪는 통과의례다.

겨울이 싫다. 꽃들이 잠들어 있어 詩 한 줄 쓰지 못할 뿐 아니라, 삭막하게 외로워야 하는 것이 싫으며, 해마다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가 너무 고통스러워 무섭기까지 한 것이 또한 싫고, 그 통과의례를 겪었다는 표시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겨울 내내 보기 흉하게 부르튼 입술로 꽃이 깨어나는 다음해의 3월까지 지내야 하는 것이 싫은 까닭이다. 그러나 어쩌랴. 꽃들이 잠든 계절이 있어야 꽃들도 꿈을 꿀 수가 있고, 그렇게 꿈을 꾸어야 오는 봄에 다시 깨어나 잎과 꽃을 피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도 또한 그 고통스런 통과의례를 치르면서, 꽃을 향한 꽃을 위한 사랑법을 재점검해 보는 것을. 꽃들에게 있어서나 내게 있어서나 겨울은 준비의 계절이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도 꽃이 없는 겨울 동안은 내내 외로워하면서도 그렇게 꿈을 키우는 일로 한 계절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계절마다 많은 풀과 나무들이 여러 가지 빛깔로 꽃을 피우고 지운다. 그런데, 어느 계절에 무슨 색의 꽃이 가장 많은지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의례히 사람

들은, 봄 하면 노랑, 여름에는 하양, 가을에는 보라의 꽃이라고 그렇게들 말을 한다. 과연 그럴까?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봄에 피는 꽃들 중에는 노랑뿐 아니라, 하양․빨강․보라․녹색의 꽃들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름에 피는 꽃에도 그렇고, 가을에 피는 꽃에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슨 색의 꽃이 제일 많이 피며, 어느 계절에 더 많이 필까?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피는 꽃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어느 한 가지의 특정한 빛깔의 꽃이 가장 많다고도 볼 수 없으며, 또한 그 특정의 빛깔의 꽃이 어느 특정한 계절에 한정해서 더 많이 핀다고도 볼 수 없다. 봄․여름․가을 할 것 없이 하양․노랑․빨강․보라․녹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꽃이 고루 어우러져 우리의 자연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을 뿐이다.

꽃이 피는 한 가지를 살펴보더라도 자연은 그렇게 오묘해서, 편을 가르거나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고 서로 어울려 융합과 조화, 그리고 균형의 美를 창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꽃, 야생화에는 왜 그렇게 혐오스럽고 못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꽃들이 많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개불알꽃․개불알풀․광릉요강꽃․애기똥풀․노루오줌․쥐오줌풀․여우오줌․소경불알․며느리배꼽․며느리밑씻개․며느리밥풀꽃․말똥비름․미치광이풀․도둑놈의갈고리․도깨비바늘․벼룩이자리․광대수염․깽깽이풀․헐떡이풀․쥐방울덩굴․파대가리․중대가리풀․쥐손이풀․말오줌대 등등...... 예쁘고 고상하면서도 부르기 좋고 정감어린 아름다운 이름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못된 이름이 붙여졌을까? 더구나 꽃의 모양새가 예쁘거나 향기가 좋은 꽃에서 혐오스런 이름이 많이 붙여져 있다는 것에 울분을 느낀다. 대체 그런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누굴까?

살펴보면, 혐오스럽고 못난 이름들의 상당한 부분은 옛날 우리의 선조들 ― 특히 일반 백성들이 양반이라는 지배층에 짓눌려 갖은 수탈과 억압으로 핍박 받으며, 또 한편으로는 가뭄과 홍수, 그리고 수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난리를 겪으면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희망 없는 나날을 살아내야 했던 날들의 지친 심신을 어디 하소연하거나 달랠 길이 없는 그 고통과 억울함을 한풀이하듯 풀과 나무에게 붙여준 이름들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통탄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은, 개화기와 일제 침략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서양의 선교사들이나 일본의 식물학자들에 의해서 식물의 이름뿐 아니라 학명마저 자기네들의 이름으로 붙인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소나무의 경우 이름과 학명이 모두 일본 국적의 나무로 되어 있지 않은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더구나 키위․카네이션․팬지․라일락․양달개비 등 우리의 식물 자원을 몰래 훔쳐가서는 자기네들 것으로 개량하여 만들었지 않은가. 그리곤 우리에게 다시 되팔고 있지 않은가. 참다래가 키위로, 패랭이꽃이 카네이션으로, 제비꽃이 팬지로, 수수꽃다리가 라일락으로, 닭의장풀이 양달개비로 등등...... 다시 역수입 되어 우리들 곁에서 활개치고 있지 않은가. 너무도 안타깝고 한탄스럽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쩌겠느냐고 그냥 그렇게 그대로 이름을 부르고만 앉아 있어야 되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아름답고 좋은 이름으로 바꾸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선 먼저 『야생화를 바로 알고 사랑하고 보호하기 운동』을 펼쳐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식물 자원을 더 이상 도둑맞지 않도록 보호 대책을 강구해야 할 뿐 아니라, 국적이 뒤바뀐 우리 식물들의 이름을 바로잡아 되돌려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러한 일은 정부와 식물학계 등 전문가들만이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식물학계에서는 식물학계대로, 정부에서는 정부대로, 환경단체에서는 환경단체대로 자기의 역할이 있지만, 또한 일반 국민들도 각자 나름대로 맡아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이다. 全國民이 모두 마음과 힘을 함께 모아야 하는 일인 것이다. 蘭과 식물인 「개불알꽃」을 이제는 모두들 「복주머니꽃」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이제부터라도 『야생화를 바로 알고 사랑하고 보호하기 운동』과 『야생화에게 아름답고 고운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불러주기 운동』을 펼쳐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호소하는 바이다.

우리가 자연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면, 자연은 우리가 주는 것보다도 열 배 스무 배 더 많이 우리에게 혜택으로 되돌려 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자연은 우리의 소중한 자원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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