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나관중 삼국지연의 57회 58회

나관중 삼국지연의 57회 58회

저자
나관중 저
출판사
유페이퍼(개인출판)
출판일
2012-12-29
등록일
2017-09-1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399K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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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第五十七回 柴桑口臥龍弔喪 耒 耒(쟁기 뢰{뇌}; ⽾-총6획; lěi,lèi) 耒陽:現在의 湖南省 耒陽市
陽縣鳳雛理事
제오십칠회 시상구와룡조상 뢰양현봉추리사.
삼국연의 제 57회 시상구에서 와룡[제갈공명]이 조상하며 뇌양현에서 봉추[방통]가 일을 처리하다.

 卻說周瑜怒氣塡胸,墜於馬下,左右急救歸船。
각설주유노기전흉 추어마하 좌우급구귀선.
각설하고 주유의 노기가 가슴을 채워서 말 아래로 떨어지니 좌우가 급하게 구출해서 배에 돌아가게 했다.
軍士傳說:「玄德、孔明在前山頂上飲酒取樂。」
군사전설 현덕 공명재전산정상음주취라.
군사들이 전해서 말하길 “유현덕, 제갈공명이 앞 산 정상에서 음주를 하며 즐거워합니다.”
瑜大怒,咬牙切齒:「你道我取不得西川,吾誓取之 !」
유대노 교아절치 니도아취부득서천 오서취지!
주유가 크게 분노하여 이를 갈며 말하길 “너희들이 내가 서천을 취하지 못한다고 말하 하니 내가 맹세코 그 땅을 취하겠다.”
正恨間,人報吳侯遣弟孫瑜到。
정한간 인보오후견제손유도.
주유가 바로 한탄하는 사이에 사람이 오후[손권]가 아우인 손유를 파견하여 이르렀다고 했다.
周瑜接入,具言其事。
주유접입 구언기사.
주유가 들어오게 하며 그 일을 말했다.
孫瑜曰:「吾奉兄命來助都督。」
손유왈 오봉형명래조도독.
손유가 말하길 “저는 형님[손권]의 명령을 받들어 도독을 도우러 왔습니다.”
遂令催軍前行。
수령최군전행.
주유는 곧 군사를 재촉하여 앞에 가게 했다.
行至巴丘 巴丘 : 현 호남성 악양시
,人報上流有劉封、關平二人領軍截住水路。
행지파구 인보상류유유봉 관평이인령군절재수로.
행군이 파구에 이르러서 사람이 상류에서 유봉, 관평의 두 사람이 군사를 시켜 수로를 끊게 했다고 보고했다.
周瑜愈怒。
주유유노.
주유는 더욱 분노하였다.
忽又報孔明遣人送書至。
홀우보공명견인송서지.
갑자기 또 제갈공명이 사람을 보낸 편지가 이르렀다.
周瑜拆封視之。
주유척봉시지.
주유는 봉투를 찢어 편지를 봤다.
書曰:「漢軍師中郎將諸葛亮,致書於東吳大都督公瑾先生麾下:
서왈 한군사중랑장제갈량 치서어동오대도독공근선생휘하.
글은 다음과 같다. ‘한나라 군사 중랑장인 제갈량은 편지를 동오의 대도독인 공근[주유]선생 휘하에 올립니다.’
亮自柴桑一別,至今戀戀 연연: ①집착(執着)하여 미련을 둠 ②그리워서 애태움
不忘。
량자시상일별 지금연연불망.
‘저는 시상에서 한번 작별한 이후로 지금까지 그리워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聞足下欲取西川,亮竊以爲不可。
문족하욕취서천 량절이위불가.
‘그대가 서천을 취하려 함을 듣고 저는 몰래 불가하다고 여겼습니다.’
益州民強地險,劉璋雖闇弱 闇弱:유약하고 사리분별을 못함
,足以自守;
익주민강지험 유장수암약 족이자수.
‘익주는 백성이 강하며 땅이 험준하며 유장이 비록 암약하나 족히 스스로 지킬 수 있습니다.’
今勞師遠征,轉運萬里,欲收全功,雖吳起 오기:오자(吳子)로 통칭된다. 위(衛)나라 사람이며, 증자(曾子)에게 배우고 노군(魯君)을 섬겼다. 제(齊)나라가 노나라를 침공하였을 때 노나라는 그를 장군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는 제나라 여자를 아내로 삼고 있었으므로 의심을 받는다고 아내를 죽여 충성을 나타낸 뒤, 노나라 장군으로서 제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그러나 노나라 사람들이 오기를 모질고 박정한 사람이라고 왕에 고하여, 노나라를 떠나게 되었다. 위(魏)나라에 가 문후(文侯)를 섬겨 장군이 되고, 진(秦)나라를 쳐서 5성(城)을 빼앗았다. 병사들을 사랑하여 생활을 같이 하였고, 문후의 아들 무후(武侯)가 위나라 산천이 험한 것을 자랑하자 나라의 자랑은 군왕의 덕에 있다고 설파하여 문후를 감격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위나라 공주가 그를 싫어하였기 때문에, 다시 위나라를 떠나 초(楚)나라에 가서 도왕(悼王)의 재상이 되어, 법치적 개혁으로 초나라를 강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초나라 귀족들의 질시를 받아, 도왕이 죽은 뒤 대신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피살되었다. 손무(孫武: 孫子)와 병칭되는 병법가로서, 『오자』라는 병법에 관한 책을 남겼다.
不能定其規,孫武孫子 『오자(吳子)』와 병칭(倂稱)되는 병법 칠서(七書) 중에서 가장 뛰어난 병서로 이 둘을 합쳐 흔히 '손오병법(孫吳兵法)'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춘추시대 오나라 합려(闔閭)를 섬기던 명장 손무(孫武:BC 6세기경)이며, 손자는 그를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예전에는 손무의 손자로 전국시대 진(晉)나라에서 활동한 손빈의 저서라고 추정하기도 하였으나, 1972년 산둥성[山東省] 린이현[臨沂縣] 인췌산[銀雀山]에 있는 전한시대의 묘에서 『손자』와 『손빈병법』 2가지가 동시에 출토됨으로써 손빈이 지은 병법서는 별개의 책임이 확인되었다.
『사기(史記)』에는 손자 13편이라 하였으나 그 편목은 알 수 없으며,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오손자병법 82편이라 하여 [병서략(兵書略)] 첫머리에 기재하고 주(注)에는 그림 9권이 있었다고 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것은 13편으로 이것은 당초의 것이 아니고, 삼국시대 위(魏)의 조조(曹操)가 82편 중에서 번잡한 것은 삭제하고 정수(精粹)만을 추려 13편 2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不能善其後也。
금로군원정 전운만리 욕수전공 수오기불능정기규 손무불능선기후야.
‘지금 군사가 원정함을 위로함에 만리를 돌아 가나 전체 공로를 거두려 하면 비록 오기가 규정을 결정하지 못하며 손무라도 뒤를 좋게 할 수 없습니다.’
曹操失利於赤壁,志豈須臾忘報讎哉?
조조실리어적벽 지기수유망보수재?
‘조조는 적벽에서 이익을 잃어서 뜻이 어찌 잠시라도 원수를 갚음을 잊겠습니까?’
今足下興兵遠征,倘操乘虛而至,江南粉矣。
금족하흥병원정 당조승허이지 강남분의.
‘지금 그대는 병사를 일으켜 원정을 가니 혹시 조조가 허한 틈을 타서 이르면 장강 남쪽은 가루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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